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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를 당하여 풍신수길이 저희 나라 안에 모든 속방을 한 채찍으로 통합 하고, 야심이 발발하여 서편으로 엿보며, 사신을 보내어 우리나라의 내정을 탐지하고, 자주 국서(國書)를 보내어 능욕이 자심하매, 양국간에 개전할 기틀이 이미 박두하였거늘 아무 꾀도 없는 만조백관들은 어리석게 편안히 앉아서 ‘왜가 아니 온다’주장하며, ‘왜가 장차 동하리라’ 혹 말하는 자도불과 한담 삼아 이야기꺼리로 돌리고, ‘저 나라의 사신이나 참하자’고 하며, ‘명나라에 구원이나 청하자’하여, 자주자립하기를 구하는 자는 도무지 없는데, 한 모퉁이에 묵묵히 앉아서 잠도 아니 자고, 밥도 아니 먹고, 훗날의 큰 전쟁을 준비하는 자는 오직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이순신 한 분뿐이러라. 본영(本營)문과 부속한 각 진(鎭)에 지휘하여 군량을 저축하며, 병기를 수습하며 군병을 조련하고, 수로를 자세히 살피고 행군하여 왕래할 길을 심중에 묵묵히 작정한지라. 오호라! 이순신이 이 관직으로 도임한 지 1년 만에 왜란이 일어났으니, 이렇게 세월이 얼마 되지 못하는 동안에 수습한 것으로도 마침내 큰 공을 이루었으며, 또한 기특한 지혜를 내어 병선을 새로 발명하였는데, 앞에는 용의 머리와 같이 입을 만들었고, 등에는 강철로 칼날과 같이 길이로 박았고, 배 안에서는 밖을 내다보아도 밖에서는 안을 드려다보지 못하게 하여, 수백 척 되는 적선 가운데로 아무 탈 없이 임의로 왕래하게 만들었으니, 그 형상은 거북과 방불하다 하여 그 이름은 거북선이라 하였더라. 그것으로 왜구를 토멸(討滅)하고, 한때에 큰 공을 이루었을 뿐더러, 곧 지금 세계에서 쓰는 철갑선의 조상이라 하여, 서양 각국 해군가에 가끔 그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느니라. 정병을 거느리고 문경세제의 험준한 곳을 지키지 아니하다가 탄금대(彈琴臺)에서 대패하던 장군신립(申砬)이 육전(陸戰)에만 전력하고 해군은 폐지 하자고 장계하여 조정에서 허락하려 하거늘, 이순신이 바삐 장계하여 가로되, “해상의 적병을 막는 데는 해군이 제일이니 해전이나 육전에 어떤 것을 편벽되이 폐지하리요?” 하여 수군을 폐지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러나 조정에서 수군에 관한 일은 더욱 심히 업수이 보아 항상 없어도 좋고 있어도 좋은 줄로 아는 고로 이순신이 체찰사(體察使)에게 상서하여 가로되, “우리나라의 방어지책을 설비한 것이 곳곳이 부실할 뿐더러 왜노의 두려워하는 바는 수군인데, 방백(方伯)에게 이문하여도 수군 1명도 파송치 아니하며, 군량이 군색은 더욱 심하며, 수군에 관한 일은 장차 철파(撤罷)되고야 말 터이니, 나라 일을 장차 어찌하리요?” 하였으며, 또 왜란이 난 후에 장계하여 가로되, “부산 동래 연해변에 있는 제장들이 선척을 많이 준비하여 바다 어구에 군사를 배치하고, 크게위엄을 베풀며 세력을 헤아려 진퇴하는 방침이 있었던들 도적이 어찌 육로에 한 발자국이나 들어왔으리요? 이런 일을 생각하오매 감격하고 분함을 이기지 못하겠나이다.” 하였으니, 그때에 조정에서 수군의 뜻이 없던 것은 가히 알 것이요, 이순신이 홀로 노심초사하며 수습하고 설비하든 것도 더욱 가히 알지로다.